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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턴 일상/부부 이야기

[연애중3]내가 너의 보호자가 될 수 없다는게 슬퍼, 우리 결혼할까?

by 쏘이_빈 2021. 9.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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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를 시작한 늦가을.
우리는 자주 만나서 술을 마셨고,
다양한 주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겨울의 추위를 좋아하지 않는 내가 유일하게 좋아하는 것은
스노우보드를 타는 것이다.

반면, 190cm가 넘는 그는
무게중심을 낮게 잡아야만 하는 겨울 스포츠를 좋아하지 않았다.
초등학교때 겨울 스키캠프를 간 이후로 스키를 타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스키 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연애기간의 남자는 여자의 부탁을 최대한 수용하려고 노력한다 ㅎㅎ

그래서, 우리는 같이 스키장을 갔다 ㅎㅎ

나는 전날 친구들이랑 먼저 간뒤, 오전부터 스노우보드를 탔고
그는 오후에 스키장으로 온 후 이른 저녁을 먹고 야간 스키를 타기로 했다.

장비를 빌리고 초급코스부터 시작한 그의 스키타기.
세상에 ㅋㅋㅋ 그런 우스꽝스러운 자세로 스키타는 사람은 처음 봤다.
한 쪽 스키를 다른쪽 스키로 살살 밀고 내려온달까?
11자 모양이 아니라, +모양으로 내려오는 큰 곰 같은 그의 모습은 너무 웃겼다.

그리고 점점 익숙해지기 시작한 그가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어쭈 이거봐라?
나도 열심히 속도를 내서 스노우 보드를 탔다.
쌩초보한테 질 순 없지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타고 집에 가자!!!

속도가 붙어서 먼저 신나게 스키타고 내려가는 곰 남친을 앞질렀다.
그리고, 다 내려와서 착지를 위해 휙 도는 순간!!
빠른 속도로 내려온 나는 얼음이 삐죽삐죽 얼어버린 스키장 바닥을 밟고 미끄러졌다.

아... 진짜 너무 아픈데?

다 내려와서 넘어져서인지, 사람들이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
계속 바닥에 엎어져있는 내 옆으로 남친이 내려왔다.


오빠, 나 다리랑 팔이 안움직여..어디 부러진게 아닐까?
한번 팔이랑 다리 들어봐봐
(얼추절추 들어지긴한다)
괜찮네~ 내가 뼈 부러져봐서 알아. 그냥 근육이 놀랜 것 같다.
그..그런가?

좀 진정이 된 후 일어나서, 내 장비를 들고 스키장 밖으로 걸어나갔다.
그리고 장비를 반납하고,
펜션으로 돌아와서 샤워를 하는데..
이상하게 팔이 들어지지 않았다.
딱히 팔이 붓지도 않았기 때문에,
팔이 어지간히 놀랐나보다 정도로 생각했다.

그리고는 너무 피곤해서 바로 잠들어버렸는데,
팔이 욱신거리는 통증에 자꾸만 잠이 깼다.
속으로, '다시 잠들자 잠들자~ 그래야 아픈것도 낫는다~'
하면서 계속 자려고 노력했다.

아 도저히 안되겠다.

자는 남친을 깨웠다.
"나 진짜 너무 팔이 아파서 안되겠어.
나 혼자라도 병원에 다녀올게"

그때는 진짜, 혼자서 병원에 가서 약이라도 타올 생각이었다.

남친은 짐을 다 싸서 같이 나가자고 했고,
그길로 원주 세브란스 병원 응급실로 갔다.
내 짐도 내가 싸고 ㅋㅋ 내가 옮겼다 ㅋㅋㅋㅋ🤣

병원까지 약 한시간.
팔의 통증은 점점 심해졌고,
차가 조금만 흔들려도 죽을 것 같이 아팠다.

병원 앞에 도착해서는 차에서 병원입구까지 가는 동안 정말 미칠것 같았다.
걸으면서 팔이 움직이니까 망치로 못을 박는 것 같이 아프고 떨렸다.


일단 엑스레이를 찍어봅시다.

저런, 팔이 부러졌네요.

🤪 세상에... 팔이 부러졌다니.... 팔이 부러졌다니..

갑자기 두려움이 몰려들면서, 미친듯이 아프기 시작했다.
왼쪽 팔꿈치 있는 뼈 부분이 3동강이 났다고 한다.
팔꿈치 연골 때문에 바로 붓지는 않았지만
점점 부어서 아픈 것이라고 했다.

이 곰같은 남친아!! 뼈 부러진거 아니라며!!!!!!!

(머쓱머쓱 😓)


뼈가 부러졌던 경험이 없었고,
너무너무 아팠기 때문에 당장 수술해달라고 했다.
근데, 나도 남친도 출근은 해야하고
수술 후 입원도 해야하니
서울에 가서 수술하기로 했다.

지금 당장 수술이 가능한 병원을 알아봐달라고 부탁해서
그 길로 원주에서부터 서울까지 갔다.
이동하는 동안 너무너무너무 아팠다. 증말..
심지어 남친 차가 10년도 넘은 가족차였던지라
속도를 조금만 내도 어찌나 흔들거리는지 진짜 죽을뻔했다.


서울로 가는 길에 엄마한테 연락을 했다.
"엄마 나 팔이 부려졌어.. 지금 수술하러 서울에 있는 병원에 가고 있어 😭"
하나 밖에 없는 딸이 걱정되었던 부모님은 그 길로 5시간을 달려서 서울로 오셨다.

아직 우리 부모님을 본 적이 없는 남친은 갑작스럽게 부모님과 인사를 하게되었다.

웬지 남친이랑 같이 있다가 다쳤다고 하면 괜히 미운털이 박힐 것 같아서,
친구들이랑 같이 스키장을 갔는데 내가 다쳐서 남친이 데리러 왔다!! 고 말했다.
남친은 거짓말을 한다는 것을 안내켜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엄청~~~ 잘한 선택이었다.

새벽에 다친 나를 데리러 서울에서 원주까지 갔다가
도로 데려와서 서울의 병원에 입원시킨 헌신적인 남친ㅋㅋㅋ을 본 아빠, 엄마는 매우 고마워 하셨다.
심지어 내가 수술을 받는 동안 아빠와 남친은 국밥에 술도 한잔했다고 한다.
(내가 걱정되진 않았나요 여러분 ㅋㅋㅋ)


무사히 수술이 끝나고 일주일간 입원을 하게되었다.
남친은 일주일 중 4번을 회사에서 퇴근하고 병원으로 왔고,
그 중 하루는 병실의 간이 침대에서 자고 갔다.


그리고 퇴원하는 날.
그가 말했다.

너는 다쳐서 정신을 거의 잃고 누워있는데
입원 과정에서 법적 보호자가 될 수 없어서 수술 동의도 못하고
입원과정도 힘들었다며, 법적 보호자가 되고 싶다고 했다.

음?

그래서, 우리 결혼할까?


으으음?ㅋㅋㅋ

이렇게 그는 결혼의 씨앗을 내게 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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